선교소식
말씀/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니라.”
오늘은 성령님께서 제게 금년 요절로 주신 요 1:14절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수제자 중 하나였던 사도 요한이 개인적인 깊은 만남과 체험을 통해서 감동 가운데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한 간증적 메시지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에서 ‘말씀’은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지요? 그 분은 영원 속에 스스로 존재하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 세상과 역사의 주관자요, 온 우주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창조주가 인간이 되셨고, 죄 많은 인간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상을 한 번 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지렁이가 되어 땅 속에서 지렁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상상도 안 되지요? 전능하신 창조주가 인간이 되어 죄인들과 함께 사셨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지렁이가 되어 땅 속에서 지렁이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 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의 상상과 이해를 초월하는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매 순간 지식으로가 아니라 사실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감격과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왜 스스로 인간이 되셨습니까? 한 마디로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자신의 분신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영적, 정서적, 육적 조건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종들을 보내어 “돌아오라! 돌아오라!” 안타깝게 부르셨습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진노의 심판을 내리셔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진노의 심판을 내리고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던져버리는 대신에, 자신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이 되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죄인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길 외에는 달리 구원의 길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임을 배웁니다. 자기 포기요 비움이며, 낮춤이요, 희생임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말이 아닌 삶이어야 함을 배웁니다. 선교는 이방인에게 성경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그 말씀을 보여주는 것임을 배웁니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한 부유한 옷감장사 아버지의 아들로서 쾌락을 즐기던 보통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25세에 회심을 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 들인 후, 그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큰 사랑에 강권되었습니다. 그는 발가벗긴 채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자기도 옷을 벗고, “오 주님! 오 주님!”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아시시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를 미쳤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난과 고통을 그 몸에 지닌 나병환자들을 통해서 가난과 고통을 몸에 지니신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이후에 그는 거룩한 가난을 최고의 보화로 여기고 스스로 가난한 자로 일생을 살면서 나병 환자 촌을 자주 방문하여 그들을 돌보며 그들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이 예수님을 말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따르는 제자들을 양성하여, 여러 나라에 다니며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48년 전 1월, 제가 대학 1학년이었던 겨울, 학교 게시판에 붙은 한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영어성경 및 영어회화 공부, 강사는 미국인 사라 배리 선교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스무 명쯤 모였습니다. 시내에 있는 한 예배당을 빌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서너 시간을 영어성경과 영어회화공부를 했습니다. 한 달반쯤 지나 종강을 할 때가 되자 7,8명 정도가 남았습니다. 사라 선교사는 종강파티를 자기 집에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미국 선교사들이 도시 외곽에 서양식 집을 짓고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살고 있는 곳은 연탄불을 때는 단간 온돌방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으나 이 분이 따르며 섬기고 있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께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저에게 이분에게서 처음 예수님을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작년 8월, 제 나이 68세에, 한국에서 스탭목자 생활 40년, 그 중에서 마지막 6년은 한국대표로서 사명을 마치고 저와 안나 선교사가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나아가려 준비할 때, 저의 4살 난 손자 다니엘이 만날 때마다 근심어린 눈빛으로 제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프라카에는 안 가시는거죠?” 저희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비우고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나갈 때, 성령님께서 충만으로 임하셔서 마음에 넘치는 평화와 기쁨을 주셨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오지 선교지로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는 가운데서도 모든 것들을 성령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사니 매일 매일 성령님의 일하심을 체험하면서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매사가 감사하여 입을 열면 “Thank God!”이 절로 나왔습니다. 밤마다 한국과 전 세계 복음역사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교사님들과 동역하며, 리더들과 일대일을 하고, 짐바브웨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저는 지난 넉 달 동안 바쁘게 일하시는 성령님을 좇아 새로운 사역을 섬기면서도, 도착 첫 날부터 매일 아침식사를 직접 준비하고, 모든 설거지를 해줌으로서 안나 선교사를 더 큰 사랑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도착 첫날부터 새벽 5-5시 반이면 눈이 떠졌습니다. 저는 조용히 거실로 나와 양식을 먹고 기도를 한 후 운동을 하고 아침을 준비하면 8시쯤 되었습니다. 저는 “공주님 아침식사가 준비됐습니다. 나오세요!”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아침 준비됐습니다!”라고 하면, 안나 선교사는 그때까지 안방에서 양식 먹고 기도하며 개인시간을 충분히 갖다가 “예!”하며 거실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고 넉 달이 지나자, 마음에 조금씩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지면 외출을 할 수 없는 치안상황과, 거의 날마다 몇 시간씩 나가는 전기사정, 일대일을 할 때에도 코를 찌르는 현지인들에게서 나는 독특한 냄새가 더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희망과 꿈과 비전이 없는 청년들,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도움을 바라는 이 백성들의 연약함에 깊은 애정보다는 짜증이 났습니다. 온통 새까만 얼굴을 가진 학생들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벽이 느껴졌습니다. 언어와 인종과 문화의 벽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기도하며 송신년 소감을 쓸 때, 하나님은 요 1:14절을 새롭게 요절로 주시며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제가 모든 것을 비웠고 내려놓았고, 더 낮은 곳 더 어려운 곳으로 주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내려왔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기 비움의 수준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세상욕심과 정욕으로 병들어 죽고 심판 받아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야 마땅했던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창조주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저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까지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프리카의 조금 힘든 상황에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이 다시 제 마음을 덮자, 저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고, 저의 죄악들이 씻어져 나감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꿈과 비전을 갖지 못하는 이들의 처지로 인한 주님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시도록 중보의 기도를 새롭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지난 한 달 내내 이 말씀이 저의 가슴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학생들의 입장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속을 못 지키고 도움 받기를 바라는 이들의 연약함을 사랑하며, 식탁을 비롯해서 이들과 함께 하기를 힘쓰고자 합니다. 이들에게서 나는 독한 냄새를 사랑하여 향기로 맡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2012년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에 강권되어 짐바브웨 학생들과 함께 함으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편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그 크고, 넓고, 깊고, 높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행하는 작은 예수들이 있는 곳에는 어떤 종류의 죄악과 인생문제를 가진 자들의 가슴도 녹아져서 변화되고 구원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시대문제가 있으나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가슴에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올해 우리에게는 성숙에 이르고자 하는 소원들이 있습니다. 개척기의 절대복음신앙을 회복하여 새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는 소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절대복음신앙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으나 그 골인점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그 사랑에 강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새 해를 출발한 이후 무엇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동역자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각기 제 길로 달려가는 캠퍼스 양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종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려고 때로는 말할 수 없이 큰 아픔을 주십니다. 목자의 삶이란 사람과 씨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사랑의 부대낌을 통해서 그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어떤 상황에서든지 신실하게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사랑은 나약한 것이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개척, 비전, 도전, 이런 것들이 강하게 보입니다. 저도 전에는 이런 주제의 말씀을 전할 때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사랑이 나약한 것입니까? 요즘에 갖게 되는 생각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열정이 나옵니다. 사랑에서 세상을 가슴에 품는 비전이 나옵니다. 사랑에서 두려움을 내어 쫓는 용기가 나옵니다. 사도 요한이 젊을 때 한 말과 노년에 한 말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90세 되어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울 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제자들이 “다른 말씀도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사랑을 알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강권되게 해주셔야 우리가 그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알게 해주시고, 그 사랑에 강권되게 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결론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보았습니다. 그 은혜와 진리를 먹은 모든 자들이 살아나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올바른 제자들이 있는 가정, 교회, 사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됩니다. 세상의 잃은 양들이 그 은혜와 진리를 받아먹고 살아날 수 있습니다. 2012년에는 우리 각 자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강권됨으로 각 자가 몸담은 곳에서 작은 예수의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개인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내가 있는 그곳이 천국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고, 온 세상을 향하여 충만한 은혜와 진리의 통로가 되게 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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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인생소감 및 선교보고, 이안나 선교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1. 칠흑 같은 어두움 속
저는 1949년 전남 순천의 한 크리스찬 가정에서 위로 세 오빠와 아래로 여동생을 두고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조선대 법대 1회 출신으로 경찰, 고등학교 교사, 나중에는 간호대를 설립하여 교감으로 일하셨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폭력적이어서 3일에 한번씩 밥상과 칼과 가위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외도를 하고 가끔 집에 오셔서 친구들과 마작을 하고 잔치를 벌렸습니다. 그때마다 동생과 저는 색동옷을 입고 노들강변 춤을 추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와 초등학교 선생님과 교회 집사님의 정욕적인 모습을 인해 저는 일찍이 어른들에 대한 존경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모든 아픔을 믿음의 기도로 견디시고 많은 이웃과 친척들과 교회분들을 섬기심으로 저희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4,19가 나고 아버지는 한 제자와 서울로 10년이상 잠적함으로 우리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어머니는 미국 선교사의 집에서 식순이로 하드워킹을 하시고 저는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1년을 쉬고 2년만에 검정고시로 중학교를 마쳤습니다. 고등학교때는 항상 수업료를 내지 못해 교무실에 불려가고 자의식으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해 혼자 다니다가 학교가 끝나면 교회로 달려가 눈물로 슬픔을 하나님께 토로했습니다. 이런 형편에 대학은 꿈도 꿀수 없었습니다. 저는 3년동안 학비와 기숙사비가 없는 전주 예수 병원 간호대에 합격케 하시면 일생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눈물로 서원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였지만 저는 곧바로 서원기도를 잊어 버렸습니다. 1학년 때 고등학생이던 여동생은 이곳 저곳에서 야단만 맞다가 아스피린 한 병을 먹고 자살을 하였습니다. 3일동안 깨어 있는 동안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2학년때는 1학년이 투표하여 뽑은 그 해의 나이팅게일이 되어 가관식때 후배들에게 촛불을 붙여 주는 영광을 얻었지만 저의 인생은 안개속과 같이 어둡고 무의미하고 목말랐습니다. 졸업후에 광주 기독병원 수술실에 1년을 근무하고 미국 이민수속을 위해 서울 국립의료원 수술실로 옮겼습니다. 광주 기독 병원 의사이신 전요한 목자님의 소개로 서울 종로 UBF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다른 교회와는 달리 마치 군부대에 온 것같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아-멘, 하는데 이곳에서는 아멘! 하여 저는 너무 무서워서 그날로 발을 끊었습니다. 저는 세계 문학전집과 함께 닥치는대로 책을 읽으며 책속에서 삶의 모델을 찾고자 하였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며 주인공 스카알레보다 고상하고 헌신적인 멜라니의 인생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숙사 간호사들의 부도덕한 생활을 보며 판단과 동시에 가치관의 혼돈과 어떤 상황속에서는 어쩔수 없지 않는가 하는 상황윤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24시간 두통과 불면증으로 매일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관리실 남자 직원과 유니폼 문제로 1시간 동안 큰 소리로 싸우고 복도에서는 간호과장에게 목례를 하지 않는 간호사로 찍혀 감독에게 불려 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고상하게 살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속물인 자신, 그리고 불신과 미움과 냉소적인 마음으로 인해 고통하며 자학하였습니다. 나는 있으나 마나한 자요 이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았습니다. 종로 목자님들은 줄기차게 심방오셨는데 저는 기숙사 문도 열어주지 않고 ‘제발 날 그냥 내버려 두세요’ 하며 밀쳐냈습니다. 저는 교만과 고집으로 도저히 소망두기 힘든 구신자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11. 열국의 어미로!
하나님께서는 제가 드린 서원을 기억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제 인생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병원에 사표를 내고 미국 출국을 앞둔 그래서 시간이 많은 한 선배가 매일 퇴근시간에 맞추어 저의 기숙사 방에서 기다렸다가 건물 옥상으로 데려가 일주일간 창세기 6강까지를 강제로 일대일 시켰습니다. 저는 바로 그 주일날부터 제 발로 예배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소원은 단 일초만이라도 평강을 누릴 수 있다면 이었는데 저의 심령에 강같은 평강이 임하고 잠도 잘 잘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공부를 하니 저는 세상과 사람들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영락없는 중풍병자였습니다. 저는 은혜에 취하여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을 계속하여 종로 학사회에 데려왔습니다. 그 중에 남은 분이 톨리도의 사라홍 선교사입니다. 그동안 미국 수속이 진행되었고 1년만에 사무엘 목자님을 소개받고 정혼하고 선교훈련받다가 ‘72년 11월 말에 목자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목자님은 이미 몇 달전에 광주에 스탶목자로 내려가셨고 저는 24살 어린 나이에 사모로서 준비되지 않는 가운데 광주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부엌에서 밥을 해대는 것부터 힘들고 누구하나 사모님, 식사하세요 말하는 이가 없어 슬프고 지친 마음에 밤에는 울기를 잘하였습니다. 더구나 광주 자매님들의 냉냉한 눈길을 견디지 못하고 3개월만에 큰 트렁크에 짐을 싸들고 2년만 미국에 갔다 오겠다며 서울로 왔습니다. 이를 보신 사무엘 선교사님은 크게 놀라시고 여러 권면을 하시고 양식 훈련으로 도우셨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선교후보 13명이 있는 종암 아파트에서 식순이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또래의 선교사들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새벽4시부터 밤중까지 도시락싸고 빨래하며 뼈빠지게 일하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서 밥이 한톨도 목에 넘어가지 않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목자님은 이틀에 한 번씩 사랑고백의 편지를 보내셨는데 당시에 너무 절망한 나머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배사라 목자님이 심방오셔서 요한복음 9:3 말씀을 주셨습니다. 날때부터 소경된 불행이 누구의 죄도 아니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제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요한복음 말씀이 일용할 말씀으로 시작되었는데 저는 자발적으로 1절에 대해 1페이지씩 소감을 썼습니다. 그러던 중에 14절 말씀이 저의 심령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흠도 점도 없으신 하나님의 황태자이신 예수님이 저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 육신으로 낮아져 오신 사랑앞에 저의 굳게 닫힌 마음이 열리고 녹아져 내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자존심을 내세우며 겉만 고상한 척하며 거짓되게 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진실되게 자신이 얼마나 춥고 외롭고 목마른 자인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일생동안 주님의 종들의 식순이로 살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절절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일순간에 지옥이 천국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기쁨과 정성으로 선교후보들의 식사를 섬겼습니다. 78년부터 시작된 한양대 개척 6년만에 70명대 예배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캠퍼스는 아름답고 비전넘치는 목장이었습니다. 매주 한편씩 감당하는 소감을 통해 저의 병든 내면이 구석 구석 치료되었습니다. 그러나 ‘84년 5월 뜻밖의 목장 이동명령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종로 3부에서 적응하고 순종하느라 40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로마서, 히브리서 말씀을 수십번씩 가르치게 하심으로 저를 복음신앙위에 굳게 서게 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를 공부하며 비전의 하나님, 역사의 하나님을 만나고 세계관이 달라졌습니다. 동시에 창 17:16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열국의 어미로 키우고 계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섬기는 수많은 자매들, 특히 인생문제가 깊어 불신과 운명과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종들을 보며 많을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중에 이들을 열국의 어미로 키우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보게 되니 모든 부담감이 사라지고 마음으로 이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을 통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개척되었고 (항가리,스위스,덴마크,아일랜드,이스라엘,폴란드)미국과 남미의 몇 지부가 개척되었습니다. 11년 만에 또다시 한양으로 돌아와서 많은 시련을 겪으며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 자만심과 자기 의와 낡을 가죽부대와 같이 된 내면을 채찍질하시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본국과 전 세계의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며 수많은 기도제목을 알게 하시고 믿음으로 중보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50주년과 계승의 역사를 준비하는 지난 1년 동안 여러 예기치 않는 어려움을 겪으며 하나님은 많은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날을 목자님과 합심기도하며 저희 모임과 저희를 새롭게 해 주시고 초창기 믿음과 개척 정신을 회복해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저희가 짐바브웨로 나아가게 된 것은 이 기도의 열매입니다. 또한 기도 가운데 이제는 끝났다가 아니라 제 인생에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기대를 갖게 하셨습니다. 시편 103: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저의 소원을 만족케 하실 것이며 나의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실 것을 확신케 되었습니다.
3. 짐바브웨 선교보고 : 급하게 일하신 하나님
7,8월 준비기간 동안 저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기 위해 부지런히 자기를 비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자기 이상과 계획과 생각, 그리고 좋은 경험과 경륜들까지 다 비우기 원하시는 성령님의 뜻을 캐취하고 순종할 때 어린아이와 같은 기쁨과 평강과 설레임을 주셨습니다. 8월 27일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짐바브웨는 남북한의 두배의 면적으로 인구는 1200만입니다. 산은 거의 없고 끝없이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땅도 기름져서 집의 뜰이나 목초지에서 맛있는 과일 나무를 볼수 있고 맛볼 수 있습니다.(선교사님들집과 센타에 파파야,망고,바나나,아보카도,오디나무들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음)해발 1950m로 한라산 높이에 자리하고 있어 기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선선하지만 그러나 나이든 저희는 숨쉬기가 약간 힘들고 오후에는 머리가 아프고 피곤을 쉽게 느낍니다. 그래서 이곳 나이든 외국인들은 3개월에 한 번씩 낮은 나라로 내려가 일주일 이상 거하며 심장을 쉬게 한다고 합니다. 100년전 영국이 계획적으로 만든 수도 하라레는 아름다운 나무들을 많이 심어 지금은 다 거목이 되어 전 도시가 공원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32년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때부터 반 서방 정책을 씀으로 서방의 원조와 투자가 끊겨 공장들이 문을 닫고, 30년 이상 독재를 하고 있는 90살 된 무가베 정권이 부패가 심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조업이 거의 없어지고 산업이 완전히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농산물 이외에는 모든 공산품들이 수입품이므로 아주 물가가 비싸고 현지인들은 살기가 어렵고 취직할 곳이 없습니다. 전기가 부족하여 매일 밤 초저녁 서너시간씩 불이 나갑니다. 처음에는 촛불을 4개씩 켜고 분위기를 즐겼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답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예상보다 전기가 빨리 들어오시면 “와! 불님이 오셨다”며 손뼉을 치며 감사를 합니다. 밤에는 가로등이 없음으로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치안상 어두워지면 밖에 걸어 다닐 수 없습니다.
우기가 시작되는 12월부터는 집주위의 개미떼들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초인적인 합심작전으로 흙을 파고 안방까지 들어오고 도마뱀과 함께 뱀같이 큰 지렁이, 온갖 벌레들이 거실을 향해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도 부지런히 이에 대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일 역시 엔조이 하므로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짐바브웨 국립대학은 1만명의 학생이 있고 전국에서 수재들만 모여 듭니다. 그러나 수도 하라레의 부자집 학생들은 모두 영국이나 이웃 사우스 아프리카로 유학을 감으로 학생들 거의가 시골 학생입니다
첫째, 짐바브웨 국립대학교에 한국어 강좌를 전격적으로 개설해 주셨습니다. 도착 이틀후 사무엘 목자님은 아무 꼬투리 없는 가운데 다만 성령님께서 기도가운데 주신 지혜대로 무조건 부 총장 비서겸 국제 교류 담당자인 다니엘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7년전에 중국어를 개설할 때 중국정부차원에서 많은 시설을 지원해 주었는데 한국정부에서는 무엇을 해 줄 수 있냐고 하였습니다. 목자님은 개인적으로 봉사하러 짐바브웨에 왔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서 문과 학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학교측이 사무엘 목자님께 한국어강좌 개설을 결정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할렐루야! 준비과정에서 한 선교사님이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하였습니다. 광고문을 만들어 학교 곳곳에 붙였는데 3일만에 200명이 넘게 지원하므로 마쉬리 학장이 깜짝 놀라고 등록을 마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화, 목 두반으로 나누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최고의 대학이지만 장학제도가 없고 학비가 400불인데 절반을 국립대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원한다고 하지만 200불도 이들에게는 너무나 큰 액수입니다. 졸업해도 취업이 거의 안되고 취업해도 월300-200불을 받으면 잘 받는 것입니다. 장학금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꼬투리가 되었습니다. 수업시간마다 한 단어를 가르치면서 성경 한 구절을 가르쳤습니다. 저희가 학교에 가면 이곳 저곳에서 “어머니. 아버지!” 라고 불러서 같이 크게 웃곤 합니다. 다음 학기에 연구실을 얻어 기도의 방이요 일대일 룸으로 사용하는 것이 큰 기도제목입니다. 12월 8일 부 총장이 참석하여 97명에게 수료증을 수여하고 3명에게 장학금을, 7명에게 우등상을 수여하였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초보자 코스와 1st 코스 두 과정을 섬기면서 소원있는 학생들을 뽑아 인격적으로 말씀공부를 섬기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둘째, 장기체류 비자를 주셨습니다. 선교사들은 보통 이 나라에 정착하는데 2년을 잡습니다. 그만큼 장기 비자를 얻는 일이 어렵고,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언어 정복과 차를 구하는 일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선배들의 경험담을 통하여 이민국 사람들이 얼마나 사람을 무시하고 뇌물을 당연히 요구하고 불의한가를 알고 단단히 마음 준비를 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수없이 찾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비자가 나오다 해도 2-3개월이 걸리고 보통 1년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하나님의 지혜로 UBF 이름으로 비자를 신청하였는데 33일 만에 그것도 2년의 도장이 찍혀 나왔습니다. 저희는 이민국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고 40일만에 한번 찾아갔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비자가 나와 있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고 주위에서도 놀라워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민국을 통해 저희가 6개월만 이곳에서 구경군으로 있다가 가지말고 적어도 2년이상은 이곳에서 푹 썩어져라,그리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섬기라고 사인을 보내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야속하여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 회개를 하고 짐바브웨를 내 집처럼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하늘의 평강을 주셨습니다.
셋째, 합당한 셋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2개월 만에 기도한 모든 조건대로 센타와 학교 가까이에 친히 집을 주셨습니다. 한 주를 부동산(복덕방)에 다녔지만 파는 집은 있지만 월세로 나온 집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건축이 전혀 없고 외국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집 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좋은 집이 나왔는데 수많은 후보들이 붙어서 뽑힘을 받아야 계약이 가능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뽑혀 700불을 지불하고 계약을 하고 이사 날자도 일주일후로 우리가 원하는 날자와 딱 맞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사날에 살고 있던 사람이 안 나가겠다고 버팀으로 복덕방에서 우리와의 계약을 해약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나 흔한 일인데 살던 사람들이 집세를 밀리고도 안 나가면 집 주인이 소송을 해야 하는데, 소송을 하면 판결이 날 때까지 보통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공짜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선교사님들은 합심기도를 하고나서도 얼굴이 근심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우리는 복덕방 아저씨들에게 다시 한 번 노력해 보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 오후부터 저와 목자님은 복덕방 아저씨들이나 살던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기로 작정하고 오직 전능의 하나님께만 눈을 고정시키고 감사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작정하시면 이 상황에서도 반드시 주실 것이요 아니면 더 좋은 집을 주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복덕방 사람들을 포함하여 5시 근무 끝난 이후와 토, 주일 쉬는 날에는 전화기를 다른 전화로 사용할 만큼 철저히 일과 노는 것을 분리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덕방 사람들이 그 날밤 12시 반에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그 시간까지 그 사람들을 내 보내기 위해 싸웠고 드디어 그 사람들이 한 밤중에 이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8시 반에 사무실에서 집 열쇠를 건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 주심으로 우리의 믿음의 싸움은 하루 만에 KO승으로 끝나고 11월 1일 출애굽 백성과 같이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집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의 섬세한 부분까지 터치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참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이 많은 저희가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아시고 속전속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희를 다방면으로 위로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저희를 향하신 겸손하신 사랑과 짐바브웨를 향하신 소망과 비전을 감사 찬송합니다.
아프리카는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이 필요하고 동시에 영적인 지도자 양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본국의 평신도 목자님들이 언어가 준비되어 퇴직 후에 실버 선교사로 나아간다면 제자 양성뿐 아니라 할 역할들이 많습니다.
짐바브웨 UBF는 이제임스, 페트라 지부장 가정과 신갈렙, 레베카 선교사님, 그리고 윤제이콥, 수잔나 선교사 가정이 동역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이 종들은 3개월 이상 저희의 발이 되어 주었고 전심하여 저희를 섬겨 주었습니다. 자비량하며 개척의 역사를 섬기는 것은 쉽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종들은 변함없이 충성하며 하나님과 양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종들의 충성과 헌신적인 섬김을 감사합니다. 대지가 1000평이나 되는 하우스를 센타로 구입하고 10명의 형제들이 공동생활하고 3명의 자매들이 신갈렙 선교사님집에서 공동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지 시니어 4가정이 있습니다. 저는 새 양인 법대 2학년 Gladys 와 꾸준히 일대일을 이루고 최고 조상인 Charity 사모와 매주 일대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세 자매들과 소감모임을 이루었습니다. 어눌한 영어이지만 자매 제자 양성에 대한 비전 가운데 이들을 인격적으로 알고 사랑하고 섬길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사무엘 목자님은 장막생활하는 세명의 형제 목자들을 일대일 공부로 섬기고, 3주마다 주일메시지를 섬깁니다. 선교사님들이 자녀 양육과 직장의 십자가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비전과 기도제목을 공유하여 12형제 제자와 12자매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새 해의 기도제목입니다.
저의 새해 방향. : 저의 새해 요절은 요한복은 3:16, 그리고 누가복음 17:21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주시되 가장 귀한 독생자, 곧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심은 아무도 멸망 받지 않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짐바브웨에는 신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자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이런 이들에게 소망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며 일방적인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쉽게 포기하고 소망을 접는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며 희생하기 싫은 이기심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제게 하나님의 소망과 사랑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하며 주는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부지런히 복음을 주고 시간을 주어 함께 하고 마음을 내어 주고 하나님의 소망을 주고 중보기도하는 목자요 어미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천국은 한국도 아니고 짐바브웨도 아닙니다. 곧 천국은 어느 장소가 아니라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순종하는 삶이 바로 천국입니다. 찬송가 495장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아 12월 한 달동안 입에 달고 불렀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입니다. 새해 동안에 이 천국의 비밀을 누리며 천국 확장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이 세상과 죄인된 저를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을 감사 찬송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짐바브웨도 구원하시고 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원문: http://anam2ubf.org/technote7/board.php?board=message222&command=body&no=192)


동영상을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media.bonnubf.org/2012/02/weltmissionsgottesdienst-bonn-ubf-das-wort-ward-fleisch-joh-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