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캐나다 여름수양회 보고와 내한 캐나다 선교사 역사(안암 이요한)

 

너는 복이 될지라

 

 


2019628일부터71일까지 캐나다 온타리오 호수에 인접한 킹스턴 시의 퀸즈 대학교에서 캐나다 여름수양회가 열렸습니다. 대략 4년에 번은 캐나다 지역 UBF 함께 모여 연합으로 여름수양회를 개최하는데 올해가 순서였습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외부 손님6명을 포함하여 22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전체 타이틀로 창세기 1, 3, 6, 12장을 공부했습니다. 창세기1 심히 좋았더라말씀을Samuel Mukwedeya 목자님이, 창세기 3 사단의 머리를 깨트리신 예수님말씀을 Natan Bekit 목자님이, 창세기6의인이요 방주를 지은 노아말씀을David Chang 목자님이, 창세기 12너는 복이 될지라말씀을Joseph Minielli 목자님이 전했습니다. 둘째 저녁 특강으로 뉴욕의David Baik 선교사님이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내용의 워크샵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보고서는 캐나다 여름수양회에 대해, 그리고 한국으로 파송되었던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복의 근원의 소망을 새롭게 품은 수양회

 

수양회를 준비하며 수양회의 목적과 주제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아직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 만남이 부족한 UBF 젊은 2세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선교사님들과 현지 목자님들이 고갈된 심령과 약화된 정체성을 회복하고 복음사역과 양들에 대한 열정을 덧입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창세기1 말씀을 통해 젊은이들이 불신적인 세상 분위기 속에서 위축된 마음을 벗고서 선한 목적을 위해 지음 받은 자신의 고귀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선교사님들은 사역의 열매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심히 기쁜 존재임을 재발견하도록 기도했습니다. 창세기3 말씀을 통해 죄의 개념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랑을 의심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 맘대로 살려는 영적인 문제임을 깨닫도록 기도했습니다. 예전에 지은 죄나 남의 죄가 아닌 현재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기도하였는데,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랑이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는지, 챕터 디렉터와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깨진다거나 권위주의와 비판으로 혼란이 없는지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창세기6 말씀을 통해 악한 시대에 복의 근원이 노아의 삶을 통해 오늘날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얻고자 기도했습니다. 창세기12 말씀을 통해 모두가너는 복이 될지라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우리 시대의 복의 근원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젊은이들은 말씀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도록, 선교사님들은 젊은 세대를 무대 위에 세우고 그들을 위한 기도의 종이요 무대 뒤의 멘토로서 역할을 하도록 기도했습니다.

 

수양회 장소인 퀸즈 대학교는 왕의 도시 뜻의 킹스턴 시에 있는데, 킹스턴 시는 오대호 하나인 온타리오 호에 인접한 캐나다의 수도입니다. 1841년에 건립된 퀸즈 대학교는 캐나다의 가장 오래된 대학 하나로서, 호수 곁에 위치한 넓은 캠퍼스와 고풍스런 석조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대학입니다. 25,000명의 학생이 재학하는 대학으로 다양한 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캐나다 UBF에서는 이곳을 개척할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젊은 학생들이 유학생 선교사로 이곳에 나아갈 있을 것입니다.

 

수양회 첫날 저녁에는 숙소 로비에서 서로를 환영하며 관계성을 트는 아이스 브레이크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캐나다 각처에서 길을 와야 했기에 피곤도 했겠지만, 오랜 만에 만나는 동역자들과 새로운 양들과 대화하고 자기를 소개하며 기쁨으로 수양회를 준비하였습니다. 다음 동안은 대체로 동일한 패턴으로 수양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오전에 그룹 성경공부와 찬양과 주제강의와 대표소감발표를 , 오후에는 소감쓰기와 소감발표를 하였습니다. 34 동안 번의 소감을 쓰고 소감발표하며 말씀 중심의 수양회를 이루었습니다. 저녁에는 찬양과 메시지, 소감발표와 합심기도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페스티벌과 같은 외적인 행사를 이루기 보다는, 내적으로 말씀에 집중하는 수양회라는 점에서 장점이 많았습니다.

 

주제 1강은 창세기 1장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 Samuel Mukwedeya 목자님이 증거했습니다.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축복하시려는 선한 목적으로 창조하신 특별한 존재임을 말했습니다. 사무엘 목자님은 지난 2 동안 직장을 구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중에, 다른 친구들은 직장도 얻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는 모습을 보며 자존감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심히 좋았더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적인 관점으로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며 자존감과 기쁨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위로와 말씀을 세인트 조지 대학생들에게 나누었을 받은 은혜보다 은혜를 체험하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세상적인 성취를 많이 이루지 못하더라도, 혹은 선교사로서 열매가 많지 않더라도, 우리를 심히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함 안에서 복된 삶이 되고 복의 근원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주제 2강은 창세기3장에 기초하여 사단의 머리를 깨트리신 예수님말씀을Natan Bekit 목자님이 증거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다가 땅에 죄와 어둠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 없이 살려는 것임을 말했습니다. Natan 목자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가정을 꾸리려 했지만 오히려 6개월 동안 직업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중에서도 자신의 삶과 복음사역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고자 애썼을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새롭게 듣고 심령을 회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이미 죄와 사단의 세력을 깨트리고 승리를 주셨음을 믿고 삶의 희망을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짓누르는 삶의 무게와 좌와 사단의 유혹을 이기고 예수님께서 이미 주신 승리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주제 3강은 창세기 6장에 기초하여 노아의 의로운 , 방주 짓는 삶에 대해 David Chang Jr. 목자님이 증거했습니다. 노아시대처럼 성적타락과 불신이 만연한 오늘날 캠퍼스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복의 근원이 있을지 질문하며, 답을 의로운 ,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노아의 삶에서 찾을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아무리 타락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 노아가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과 참된 축복이 세상에 흘러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David 목자님은 애드먼턴 UBF에서 매주 주일 메시지를 섬기는데, 사람들이 주말에 놀러 다니는 가운데 자신은 메시지를 준비하러 캠퍼스로 때면 노아의 심정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번 수양회가 캐나다 국경일이 황금연휴 기간에 열렸기에 수양회에 참석한 분들은 시대의 노아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의 방주를 지은 노아처럼 세상을 구원하는 복의 근원이 되자고 하였습니다.

 

주제 4강은 창세기 12장에 기초하여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을 Joseph Minielli 목자님이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아브라함을 키우셨듯이, 레베카 선교사님이 다운을 반복한 자신을 10 동안 인내와 사랑으로 키운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삶을 떠나야만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인생이 시작됨을 말했습니다. 중국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가 많은 고난 중에서도 중국 선교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을 그의 생전에만 수천 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런 일은 허드슨 테일러가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부르심의 땅에 계속 머무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캐나다 동역자들과 선교사님들 중에 열매가 없어 비전과 목적을 잃은 경우가 있다면, 부르심을 결코 포기하지 말고 부르심의 장소에 머무르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위대한 일을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조셉 목자님은 과거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나 이기적이고 방탕하게 지내며 복의 근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지만, 2010 여름수양회 예수님을 만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으로 인생전환을 하였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처럼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안나 선교사와 결혼한 , 함께 캐나다와 Humber 대학생들을 위한 복의 근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젊었든 늙었든 나이에 구애 받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새롭게 영접하고 복의 근원의 삶을 힘써 살아가자고 했습니다.

 

둘째 저녁에는 뉴욕의 데이빗 선교사님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제목의 특강과 워크샵을 인도했습니다. 복음의 동역자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가 먼저 질문했습니다. 그것은 문화적 충돌이나 세대 충돌이 아니라 정서적 미성숙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열심히 복음역사를 섬기더라도, 정서적 미성숙 상태에서는 복음의 동역자들이나 배우자와 끊임 없는 갈등을 일으킬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먼저 정서적 미성숙 상태를 벗어나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로 성장하도록, 그리고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를 양성하도록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각각의 주제강의 후에는 리더들이 준비된 인생소감을 발표하며 주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참석자들이 주제강의에 기초하여 소감을 쓰고 발표하면서 말씀 중심의 수양회를 이루었습니다. 수양회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좋지만, 이번 수양회처럼 단순히 말씀과 소감에 집중하는 수양회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남아야 수양회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삶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드리는 것인데, 매번 주제강의를 시작할 함께 모여 뜨겁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찬양의 시간은 젊은 캐나다 대학생들 리더들이 뜨거운 심정과 영으로 인도했습니다. 어떤 캐나다 자매목자님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찬양을 인도하든지, 찬양의 스피릿이 청중을 압도하여 하나님을 향한 모두의 심정이 불타오르게 했습니다. 이처럼 젊은 캐나다 제자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통해 캐나다 UBF 희망찬 현재와 미래를 보았습니다.

 

이번 수양회 다음 캐나다 지부장으로 젊은 현지목자님이 세움 받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수양회가 끝나고 챕터 디렉터 선교사님들과 목자님들이 모여서 새로운 캐나다 지부장(코디네이터) 뽑는 투표를 하였습니다. 이에 캐나다 현지목자인 Philip Wong 목자님이 새로운 캐나다 지부장으로 선출 되어, 지난 8 동안 지부장으로 많은 수고를 하신 핸리 선교사님을 계승하여 내년부터 전체역사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세계대표이신 윤모세 선교사님은 화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일에 집중하자 하셨고, 캐나다 지부장을 새로 선출하는 과정을 인도하고 조율해 주셨습니다.

 

캐나다 UBF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위니펙에 선교사님들을 파송함으로 시작되어 이제 40년이 되었습니다. 캐나다 UBF 구성은 초기 개척 선교사님들, 이후 파송되어 선교사님들, 개척기부터 함께 캐나다 현지 목자님들, 지금 새롭게 자라나는 캠퍼스 제자들, 그리고 2 선교사들로 되어 있습니다. UBF 어느 챕터에서나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겠지만, 캐나다 UBF 시니어 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함께 모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의 헌신과 믿음, 새로운 세대의 스피릿이 조화를 얼마나 이루는가 하는 것이 행복하고 지속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관건일 것입니다. 캐나다 UBF 것과 것이 조화되어 그리스도 중심의 아름다운 제자공동체를 이루어 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캐나다 UBF 계속하여 캐나다 영혼들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근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수양회 후에 토론토에 있는 내한 캐나다 선교사 전시관(visionfellowship.org) 라이어슨의 안나 , 미시소거의 이사야 선교사님과 방문하여, 한국으로 파송 되었던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아름다운 헌신의 발자취를 살펴볼 있었습니다. 그때 안내하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소개 받은 부르심 받아 땅끝까지라는 책을 참고하여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역사를 짧게나마 살펴 보고자 합니다. 캐나다 교회는 한국교회와 민족의 근대화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1 전인 1888, 우리 민족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의 때를 지나던 시간부터 캐나다 교회는 한반도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고, 이후 200 가량의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이는 3000 가량의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에 비해 적지만, 영향력 면에서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우리는 캐나다와 미국을 북미에 속한 나라로 하나로 묶어서 보는 경향이 있기에, 선교사 파송에 있어서도 사이에 구분을 크게 하지 않기 쉬운데, 서로가 맞물려 있는 점도 있는 가운데 캐나다 나름의 아름답고 역동적인 선교역사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선교사 전시관을 안내하신 분은 안내하기 전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라는 가스펠 송을 함께 부르자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캐나다 교회는 한국교회 오순절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국교회의 오순절은 평양대부흥운동인데, 운동에 도화선 역할을 것이 캐나다의 로버트 하디 선교사님을 통해 일어난 원산대부흥운동입니다. 당시에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따라 캐나다 선교사님들은 주로 함경남북도에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의료선교사인 하디 선교사님은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1890 25세의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부산, 서울, 원산 등지에서 의료선교를 하였습니다. 강원도에서 3 사역을 적이 있었는데 열매가 없어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1900 경에 중국에서 서양인을 몰아내려는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피해 조선으로 와서 사역을 하던 중국 여선교사 출신의 화이트와 매컬리를 포함한 12명의 선교사가 1903년에 기도회로 모인 곳에 하디 선교사님이 강사로 초청 받았습니다. 이때 하디 선교사님은 기도하며 먼저 자신의 영적 부족함과 교만을 깨달으며 은혜를 체험한 사경회를 인도하였는데 이것이 원산대부흥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성령충만한 하디 선교사님은 며칠 주일예배 원산 감리교 교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교만, 특히 백인으로서 우월감의 죄를 진실되게 회개했고, 이에 조선인 교인들도 선교사님들을 미워하던 마음을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조선인들은 선교사님들에게 마음 문을 좀처럼 열지 않았고 교회에 오지도 않았는데, 이런 진실된 회개의 역사가 도화선이 되어 원산에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님은 이후 전국을 다니며 부흥강사로서 부흥운동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부흥의 불씨가 전국으로 번지다가 평양으로까지 이어져 1907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디 선교사님은 1935년에 은퇴하기까지 45 동안 의료선교사요 복음의 종으로 헌신하였습니다.

 

둘째, 캐나다 선교사님들은 교육, 의료, 성경번역, 독립운동지원 분야에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선교사님들을 통해 이런 모습을 살펴볼 있습니다. 제임스 게일 선교사님은 D.L. 무디의 설교로 세계선교 비전을 덧입고 1888 최초의 캐나다 선교사로 조선에 왔습니다. 게일 선교사님은 구한말 망해 가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있는 조선의 개혁파 리더들에게 복음으로 나라가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게일 선교사님은 언더우드, 레널즈, 존스 선교사님과 함께 한글성경 번역작업을 했는데, 당시에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순회전도에 바빴기에 한글성경 번역작업을 게일 선교사님이 많이 감당했습니다. 게일 선교사님은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 한자와 한문학을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명문 토론토 대학 영문과 출신에다가 한문과 한글에도 조예가 깊어 성경번역에 적임자였습니다. 또한 조선 땅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전국순회를 25 이상 하였고, 때로는 만주 광개토대왕비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연구와 탐방을 통해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를 가진 훌륭한 민족임을 알게 되었고, 조선 사람들에게 자기 조상들의 훌륭한 역사를 일깨우며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었습니다. 게일 선교사님은 최초의 한국말 성경 번역작업을 감당했다는 점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천로역정 번역하고, 영한사전을 만들고, 한국 역사책을 저술했습니다. 구운몽, 춘향전, 심청전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우리 고전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조선을 이해하고 조선을 알리기에 힘썼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장로의 회개로 시작되었는데, 길선주 장로는 이전에 게일 선교사님이 번역한 천로역정을 읽고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게일 선교사님은 종로의 연동교회 초대목사로 부임하여 섬겼고, 조선에 만연한 신분차별을 교회에서부터 없애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청계천 일대의 호적 없는 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으며, 그들에게 호적을 만들어 것을 고종황제의 주치의였던 에비슨을 통해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토론토대학 동양학부 교수로 재직하셨던 유영식 교수님은 제임스 게일 선교사님이 초기에 한국말 성경을 번역했다는 점에서 게일 선교사님을 한국의 마틴 루터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게일 선교사님에 대한 자신의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한 착한 목자, 게일의 삶과 선교 2013년에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맥켄지 선교사님은 캐나다 동부의 노바스코샤 출신으로 핼리팩스의 달하우지 대학과 파인힐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선교사로 1893 33세의 나이에 황해도 소래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소래교회 목사로 2 가량 섬겼습니다. 이분은190센티가 넘는 키에 신체 건강한 분이었음에도 열악한 조선의 환경 속에서 외로움에 시달렸고, 이런 중에서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으며 완전한 한국사람의 입장이 되어 열정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다가 과로와 열사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이 캐나다에 전해지자 그때부터 많은 후배들이 속속 조선으로 선교사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맥켄지 선교사님의 어머니는 아들이 보내 왔던 편지들과 여러 자료들을 엘리자베스 머컬리 선교사님에게 주면서 아들의 일대기에 대한 출판을 부탁했는데, 책의 제목이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이고, 토론토 대학의 유영식 교수님이 책을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맥켄지 선교사님은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믿음의 영향력은 매우 컸고, 그분이 섬긴 황해도 소래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한옥 교회당인 소래교회의 모형이 오늘날 총신대학교 용인 교정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소래교회와 맥켄지 선교사님의 삶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맥켄지 선교사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후배 하나인 로버트 그리어슨 선교사님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핼리팩스 출신으로 달하우지 의대와 파인힐 신학교를 졸업하고 1898 함경도 지역으로 가서 30여년 동안 의료와 교육과 선교사업에 매진했습니다. 이분은 목사요, 의사요, 교육가로 크게 활약하며,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하는 민족운동가들을 후원했습니다. 두만강을 넘어 동만주 지역의 조선인들을 위해 본토에서처럼 병원과 학교와 교회를 세워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던컨 맥래 선교사님은 맥켄지 선교사님처럼 노바스코샤 출신에 달하우지 대학과 파인힐 신학교를 졸업했는데, 조선에서 생명을 바친 선배 맥켄지 선교사님의 삶에 감동을 받아 그의 뒤를 이어 조선에 가지 않고서는 견딜 없었습니다. 그래서 1898년에 조선 땅을 밟아 부인 에디스 맥래 선교사와 함께 1937년까지 40 가량 선교사역에 헌신했습니다. 던컨 맥래 선교사님은 함흥과 원산 지역의 선교사역과 교육사역에 힘썼고, 함흥을 거점 삼아 함경도 지역을 다니면서 원산, 영흥, 정평, 흥원, 단청, 갑산 등지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토목, 건축, 축산 농업 지도도 했으며, 1907년에 영생남학교를, 1918년에 함흥 YMCA 창설하고, 3.1운동을 지원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습니다. 부인 에디스 맥래 선교사님은 1903년에 원산에 영생여학교를 설립하여 함흥과 원산 지역의 교육선교에 힘을 썼습니다.


에델 맥애천 선교사님은 퀸즈대학 출신으로 1913년부터 1915년까지는 함경도 성진에서 교육선교에 힘쓰고, 1915년부터 1941년까지는 함흥의 영생여학교에서 교장으로 봉직하며 교육선교에 힘썼습니다.


스탠리 마틴 선교사님은 이번 수양회 장소였던 킹스턴의 퀸즈 대학교 의대 출신입니다. 1915년부터 만주 용정의 제창병원 원장을 역임하며 흩어진 조선인들을 섬기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북간도 지방의 만세운동인 3.13 만세시위 부상자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치료하며 학살의 참상을 구미 각국에 폭로한 공로로 상해임시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브란스 결핵협회를 조직하여 결핵퇴치를 위해 힘쓰다가 1940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님은 온타리오 약대와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의대 교수로 살았는데, 1892년에 선교모임에서 언더우드 선교사님으로부터 해외선교 제안을 받고서는, 의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1893년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를 통해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제안 이전에 이분도 D.L. 무디의 영향을 받아 대학생자원운동(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 흐름을 따라 선교사로 나올 있었습니다. 미국인 의료선교사 알렌이 1885년에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세웠고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1894년에 에비슨 선교사님이 제중원을 선교부로부터 이관 받아, 1904년에 제중원을 신축하면서 기부금을 미국인 사업가 세브란스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 병원이라 이름을 변경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대중에게 서양 의료 혜택을 베풀고자 노력했습니다. 1915년에 자신을 해외선교지로 이끈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조선기독교학교를 개교하고 이듬해 사망하자, 그를 이어 교장이 되어 1917년에 연희전문학교로 인가를 받아 보편적인 기독교 지도자 양성에 힘썼습니다.


스코필드 선교사님은 토론토 대학 수의과를 졸업하고 의료선교사로 1916년에 내한하여 세브란스에서 교수로 재임하는 중에, 독립운동을 고취하고 3.1운동을 적극 후원한 공로로 ‘3.1운동의 34으로도 불립니다.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다가 강제추방을 당할 , 3.1운동 일제가 저지른 잔혹한 만행을 담은 관련 사진들을 오른쪽 다리에 붕대로 감아 숨겨 나가 세상에 알린 용감한 선교사님이었습니다. 해방 한국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받고 서울에서 사시다가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선교사님들은 일본과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3.1운동에 다소 소극적이었지만, 캐나다 선교사님들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기독교 병원과 의료선교사들이 치외법권인 것을 활용하여 기독교 병원을 3.1운동의 연락처로 내주기도 하고,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3.1운동으로 환자가 급증하자 기독교 병원은 환자들을 대개 무료로 치료해주고 투옥된 환자들도 치료해 주었는데, 이런 진실된 사랑이 많은 한국인들에게 감명을 주어1920년대 한국교회 확장의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 로제타 의사선교사 부부는 1890년에 내한했는데, 1894 청일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남편 윌리엄 선교사님은 전염병에 감염되어 35세의 나이로 먼저 소천했습니다. 윌리엄 선교사님은 이번 수양회 장소였던 킹스턴의 퀸즈 대학교 의대에서 공부했고, 로제타 선교사님은 미국 펜실베니아 여자의대를 졸업했습니다. 로제타 선교사님은 남편 윌리엄 홀이 소천하고 3 동안 미국으로 잠시 갔다가, 1897 평양으로 다시 내한하여 남편을 기념하여 기홀병원을 설립하고, 이듬 평양에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부녀자와 아동을 위한 의료사역을 했습니다. 이외에도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동대문 릴리언 해리스병원을 설립하였으며, 한국최초의 여자 의학교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하는 1933 은퇴할 때까지 43 동안 의료선교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951 뉴저지에서 소천하신 남편과 딸과 손자가 묻힌 양화진 선교사묘역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셔우드 선교사님은 윌리엄 , 로제타 선교사님의 아들인데, 조선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인입니다.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1926년부터 1941년까지 황해도 해주에서 의료선교에 힘썼습니다. 1934년에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결핵퇴치운동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1941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추방 인도 선교사로 가서 인도 결핵퇴치운동에 힘썼습니다. 1991 98세로 벤쿠버에서 소천하여 지금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부인인 메리안 선교사님도 외과의사로 남편과 함께 의료선교와 결핵퇴치운동에 힘썼고, 남편이 소천한 후에 95세로 밴쿠버에서 소천하여 지금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1991 밴쿠버의 요양병원에서 병상의 셔우드 홀을 만난 최선수 장로님은 자신이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중국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하자, 셔우드 선교사님은 그의 손을 잡고 한국 축복, 한국 축복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셔우드 , 메리안 선교사님은 1984년에 대한결핵협회의 초청으로 44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 평생을 한국을 위해 헌신한 관계로 당시에 입을 만한 변변한 옷이 없어 친지들이 마련해준 옷을 입고 갔다는 일화가 있는데, 부모님의 대를 이어 한국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은 이분들의 따뜻한 사랑에 뭐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플로랜스 머레이 선교사님은 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신으로 달하우지 의대를 졸업하고 1921년부터 1969년까지 해방 전후 48 동안 함흥 제혜병원과 원주 기독병원에서 한국을 위해 의료선교사로 섬겼습니다. 6.25전쟁 북한 길이 막히자, 함흥 제혜병원의 회복을 생각하며 함흥과 가장 가까운 땅인 강원도 원주에 병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원주 기독병원입니다.


케이트 맥밀런 선교사님은 볼티모어 여자의대를 졸업하고 1901년부터 1922년까지 의료선교사로 섬겼습니다. 함흥의 본격적인 의료 사역은 맥밀런 선교사님이 1903 설립한 함흥 제혜병원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한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가지 질병인 발진티부스, 콜레라, 천연두 환자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맥밀런 선교사님은 1922년에 여학교 기숙사에서 발생한 일곱 명의 열병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22 간의 헌신과 봉사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루터 선교사님은 재일동포를 위한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노바스코샤 출신으로 달하우지 대학과 파인힐 신학대를 졸업하고, 1906년부터 20 동안 함경도에서 선교사역에 수고하시다가, 1927년부터는 일본으로 가서 일본인 선교가 아니라 재일본 한국인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일제는 1910 한일합방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워서 토지등록사업을 벌였는데, 이는 조선인의 토지를 헐값에 매입해서 국토를 뺏으려는 사업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농부들이 영문도 모른 조상의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조선인 인구가 1200만에서 1500만으로 추산되는데, 중에서 400 가량의 가족이 농토라는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 농민 가족들 중에 200 가량이 먹고 살기 위해 만주로 망명 가고, 일제 말까지 일본으로 넘어간 경우는 200 명에 달했습니다. 일본에 조선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많은 차별과 박해를 받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1923 일본의 관동대지진 일본인들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대학살사건입니다. 대학살사건은 관동대지진으로 입은 괴멸적 피해와 사회적 패닉 상태를 조선인들을 희생양 삼아 해소하려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넣고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다는 누명을 씌워서 공식적으로는 최소 6,000, 비공식적으로 수만 명의 조선인들이 학살 당하고 암매장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고난 중에 살아간 재일본 조선인들을 위해 루터 선교사님을 비롯한 35명의 캐나다 선교사님들은 재일본 한인교회를 개척하여 목자의 심령과 눈물로써 국제 피난민 같은 조선인들을 섬겼습니다. 저녁을 함께 먹고, 야간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부모가 나간 어린 아이들은 탁아소를 만들어 돌봐 주고, 노인들을 위해서는 교회에 양로원을 만들어 돌봐 주었습니다. 캐나다 선교사 35명은 한국 본토에서 했던 것과 같이 일본 땅의 조선인들을 위해 의료, 교육, 선교역사를 이루어 섬겼고, 일을 위해 캐나다 교회들은 물질과 기도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캐나다 교회의 한국을 위한 기도와 사랑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 언급한 캐나다 선교사님들 이외에도 지금까지 파악된 내한 캐나다 선교사들만 해도 200명에 달합니다. 이들 중에는 조선을 가장 사랑한 선교사 분이요 한국침례교의 선조인 말콤 펜윅 선교사님, 노바스코샤 출신으로 원산과 함흥에서 교육선교와 여성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칭송을 받고 원산대부흥운동의 도화선이 12명의 기도모임을 이끈 루이스 매컬리 선교사님, 그리고 맥켄지 선교사님의 일대기를 책으로 편찬한 엘리자베스 맥컬리 선교사님 많은 캐나다 선교사님들이 조선과 한국의 치유와 회복과 구원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이들 선교사님들과 자녀들 중에는 지금도 계속하여 평생을 한국과 북한을 위해 기도하며, 남은 재산을 선교역사를 위해 드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전시관을 안내하신 분은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이 조선인들에게 끼친 많은 영향 중에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먼저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든 조선인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알게 하여 영혼의 자유를 주어 삶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육을 통해 문맹을 깨쳐 삶을 살아갈 지혜를 얻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삶의 희망을 갖게 하여 영육 간에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병든 자들을 치료하여 40 정도에 삶을 마치던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고 수명을 연장시켜 열심히 일하고 가정을 꾸리며 세대를 이어 가게 했습니다. 이처럼 선교사님들이 조선인들에게 참된 자유와 올바른 지식과 건강한 삶을 선물로 줌으로써 우리 민족의 근대화의 기초가 점점 놓여 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젊은 예수님의 복음을 들고서 고난의 땅을 찾아와 순수한 섬김을 베푼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아름다운 헌신과 사랑을 생각할 깊은 감동이 아니라, 이러한 위대한 역사를 알지 못하고 보응하지 못한 무지와 무관심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우리UBF 캐나다 선교사님들이 이런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 사역의 역사적인 의미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40 동안 우리 선교사님들을 통해 캐나다 캠퍼스 영혼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많은 젊은 영혼들이 치유 받고 구원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게 하신 것에 감사 드리게 됩니다. 캐나다 UBF 젊거나 혹은 성숙한 복음의 일꾼들이 캐나다에 선교사로 오시는 것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캐나다는 이민의 문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짝 열고서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도록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의 때에 캠퍼스 미션과 세계선교 사명감, 그리고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사랑의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 무엇보다 죄의 되어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복의 근원 되고자 하는 비전으로 캐나다로 나아가는 믿음의 행렬이 이어지길 희망해 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의 자손인 예수님을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조선 땅을 찾아오신 많은 선교사님들, 이런 중에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복을 아낌 없이 나누고 베푼 복의 근원들이십니다. 이분들을 통해 한국교회와 한국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복을 만민에게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으로서의 부르심과 소명이 있음을 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복의 역사, 복을 받고 복을 나누어 복의 근원 되는 역사가 내한 캐나다 선교사님을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이런 축복의 물줄기가 우리를 통해 한국과 세계를 향해 힘차게 다시 흘러 나아갈 있기를 기도합니다.